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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 있다 ③

B-ARTS Festa
in 따뜻한 사람

허석민

부산에서 작업을 이어온 나에게 올해 B-ARTS Festa 참여는 단순한 행사 참여가 아니었다. 극단 <따뜻한 사람>의 성장을 공유 할 수 있는 시간이었으며, 동시에 우리 극단이 걸어온 변화를 차분히 돌아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2017년 극단을 창단한 이후 몇 년 동안 우리는 지원 한 번 받지 못한 채, 거의 모든 작품을 사비로 제작하며 버텨왔다. 그래서 2022년까지는 부산문화재단, 극단 <따뜻한 사람>, 그리고 작업자 허석민 사이에 어떤 ‘끈’도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2022년 (구)공연장 상주단체 사업에 선정되면서 처음으로 재단과 우리 극단이 서로 연결되기 시작했다. 그 인연은 단순한 지원을 넘어 극단의 방향과 작업 규모를 바꾸어 놓았고, 지원을 기반으로 극단은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극단 따뜻한 사람의 최근 몇 년은 그 성장의 흐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올해는 (현)씨어터 링크 지원 사업을 통해 제작한 창작극 ‘바람을 일으키는 작은 손, 부채’가 2025년 부산연극제에서 새연극상, 우수연기상, 무대예술상을 수상하는 성과를 냈고, 소극장 <6번출구>에서 진행한 공연 역시 전 회차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2024년에는 극단 레퍼토리 창작극 ‘컨테이너’가 부산연극제 최우수작품상, 우수연기상 2명, 우수희상을 수상했고, 이 작품 또한 소극장 <6번 출구>에서의 모든 회차가 매진되며 관객들의 큰 관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모든 흐름의 중심에는 씨어터링크 지원이라는 안정적인 기반이 있었다. 창작환경이 안정되자 작업이 흔들리지 않았고, 극단은 보다 집중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창작을 이어갈 수 있었다. 결국 우리는 부산문화재단의 지원을 통해 성장했고, 예술가로서 계속 앞으로 나아가며 도전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
공연예술은 늘 사람과 사람 사이의 보이지 않는 실로 이어져 있다. 서로 다른 철학과 서로 다른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한 공연 안에서 호흡을 맞추고,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며, 사고와 감정을 나눈다. 우리의 지난 시간도 그 보이지 않는 실들이 하나씩 연결되며 만들어낸 결과였다.

올해 극단 <따뜻한 사람>의 주요 활동을 하나 꼽으라면, 단연 프랑스 아비뇽 off 페스티벌 참가다. 아비뇽은 세계 수백 개의 팀이 모여 각자의 질문과 미학을 펼쳐내는 거대한 장인데, 그 안에서 부산에서 출발한 우리 팀이 관객을 만났을 때 느낀 것은 단순한 ‘해외 진출’이 아니었다. 전혀 다른 나라, 전혀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과 공연예술이라는 형태로 하나의 끈을 만들고 있다는 감각이었다. 프랑스 관객들은 ‘컨테이너’가 다루는 인간의 고립과 연대, 그리고 희망이라는 주제를 깊이 공감해주었다. 부산에서 창작되고 사장되어질 수 있었던 작품이 프랑스 현지 언론의 인터뷰와 많은 비평가들로부터 비평을 받으며 유럽으로 확산될 가능성을 열었다. 또한 여러 출판사에서 출판 제안까지 들어왔을 때, ‘지역에서 작업하는 극단에게도 이런 길이 열릴 수 있구나’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실감했다. 부산문화재단과 우리 극단이 처음 연결되기 전인 2022년 이전의 <따뜻한 사람>을 떠올리면 이런 일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원 없이 사비로 버티던 그 시절에는 해외는커녕 다음 작품을 준비 할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번 아비뇽 경험은 ‘성장’ 그 자체이면서, 우리가 어디까지 성장해 나갈 수 있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 사건이었다. 지역에서 청년예술가들이 자리를 잡고 꾸준한 창작활동을 이어갈 수 있다면, 그리고 그 활동이 지역에만 머무르지 않고 국내외로 확장될 수 있다면, 많은 청년예술가들이 부산을 떠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 길을 만드는 데 부산문화재단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느꼈다. 부산문화재단에서 청년예술가들의 지속적인 지역 활동을 고민할 때, 단순히 지원금을 늘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예술가의 작업 반경을 넓히고, 스스로의 작업에 대한 자긍심을 키울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극단이 그 사례 중 하나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극단 따뜻한 사람의 단원은 현재 28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중 95%가 청년예술인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B-ARTS Festa는 그런 의미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였다. 부산문화재단 지원사업에 참여한 예술가들이 한 해 동안 어떤 성과를 이루었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가능성이 열렸는지를 서로 공유하는 장이기 때문이다.

우리 극단은 이번 B-ARTS Festa에 ‘컨테이너’의 공연사진과 대본을 함께 전시했다. 아비뇽에서의 경험을 단순히 성과로 남기는 것이 아니라, 많은 예술가들과 시민들에게 실제 작업의 흔적을 공유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또한 ‘컨테이너’의 일부를 15분 쇼케이스 공연으로 선보이며, 작품이 어떻게 무대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지를 직접 보여주는 시간도 가졌다. 전시장 곳곳을 돌아보며 타 장르 예술가들의 작품과 활동을 접혔을 때, 부산 예술 생태계가 얼마나 폭넓고 깊이 있는지 다시 한 번 실감했다. 문화소외계층과 사회적 약자를 위한 예술활동을 꾸준히 이어가는 분들도 있었고, 사라져가는 부산의 풍경과 이야기를 기록하는 작업자들도 있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부산’을 그리고 있었다.
B-ARTS Festa는 그 다양한 시선과 방향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드문 자리였다. 한 공간 안에서 예술가들의 고민, 실험, 성찰, 성과가 동시에 펼쳐졌다. 예술가에게 이런 자리는 단순한 구경이 아니라, 서로의 생각을 읽고, 작업의 방향을 넓히고,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배움의 장이다. 무엇보다도 이 축제는 성과공유회를 넘어 예술가들이 서로 교류하고 관계망을 만들어가는 플랫폼이라는 점에서 더욱 중요하다. 누구의 성과를 자랑하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 각자의 예술이 다른 예술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 확인하는 자리에 가깝다. 이런 연결은 앞으로의 작업에서 큰 도움이 되며, 지역예술이 고립되지 않고 살아 움직이도록 만드는 핵심요소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B-ARTS Festa는 부산 시민들에게 ‘부산에도 다양한 예술이 있다’는 사실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창구다. 시민들이 예술가들의 활동하는 공간으로 찾아와 경험하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 스스로가 시민에게 다가가는 과정인 자리인 것이다. 이 축제는 단순한 행사가 아니라, 지역예술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고, 예술과 시민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축제의 장이었다. 부산문화재단의 지원으로 만들어진 결과들이 다시 지역으로 환원되고 예술가-예술가, 예술가-시민, 예술-도시 사이에 새로운 끈을 지속적으로 이어나갈 수 있는 힘을 만들어내는 자리였다.

허석민

부산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보이지 않는 끈을 무대 위에 올려온 연출가.
작은 연습실에서 시작된 질문들이 세계와 다시 부산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며, 오늘도 현장에서 느린 걸음으로 작품을 만들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