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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 있다 ①

다시, 고통을 느끼는 우리로

최승현

기후위기 탄소중립 with 비치코밍 기획전시

<2025 기후위기 탄소중립 with 비치코밍>이란?
일상 속 생활문화 활성화 사업으로 시민과 함께하는 탄소중립 실천 예술 행동

독했던 여름이 지나고, 얼마나 매서울지 짐작조차 어려운 겨울 문턱이다. 살을 에는 듯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우리는 또 기후위기와 이상 기온에 대해 습관처럼 떠들어댈 것이다. 지금이라도 탄소중립을 실천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거나, 기후위기의 책임론과 음모론을 추적하기에 바쁠 것이다. 극한의 더위와 추위에 직면하고 문제를 인지하는 우리의 감각도 더욱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아픔이 느껴지기까지, 우리는 아파도 아픈 줄을 모른다.

자연의 일부인 인간은 어째서 현재의 기후위기를 자신의 고통으로 느끼지 못하게 된 것일까. 우리는 언제부터 자연을 분리된 대상으로 여기며, 자연과 연결된 감각의 신경망마저 끊어져 버린 것일까. 이 신경망을 재건해 그 고통이 우리에게 전달된다면, 그래서 현재의 기후위기가 바로 우리의 아픔임을 느낄 수 있게 된다면, 회복을 향한 우리의 노력이 당연해질 수 있지 않을까.

기획전시 《2025 기후위기 탄소중립 with 비치코밍》는 그런 자연과의 일체 감각을 누구보다 앞서 회복한 이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부산문화재단과 시민단체가 주축이 되어, 지난 5년 동안 시민들의 참여를 기반으로 진행해 온 비치코밍 활동을 전시의 형태로 정리해 보자는 데서 출발했던 것이다. 말보다는 행동과 실천으로 회복의 길을 닦아온 이들의 이야기다. 사진, 영상 등의 기록은 물론, 비치코밍으로 얻은 오브제를 활용한 설치 작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축적된 결과물들은 그들이 그간 얼마나 값진 시간을 쌓아 왔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숨 쉬는 자료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성과에 더해, 전시장으로 사용 예정이었던 한성1918의 재개관이라는 역사적 전환점에도 의미를 실어, 보다 의미 있는 사업을 추진해 보려는 부산문화재단의 열의가 구체화되면서 전시는 점차 확장되었다. 그리고 바로 그 무렵, 나도 이 전시의 기획자로 참여하게 되었고, 기획전시 《2025 기후위기 탄소중립 with 비치코밍》은 비치코밍의 실제 기록을 다루는 《파도를 넘어》, 기후위기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사유를 다루는 《다시, 태그》 두 개의 전시로 구성되는 최종의 골격을 갖추게 되었다.

《다시, 태그》의 기획자로서 이야기하고자 한 것은 다름 아닌 ‘고통’이었다. 예술마저 인류의 심리적 치유나 위로, 안정감 형성을 위해 존재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여기는 오늘날의 사회에서 ‘고통’은 언젠가부터 기피의 감정이 되었다.01 예술애호가라 자처하는 이들조차 예술을 통해 아름다움과 평온함, 행복감을 확인하고자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고통은 우리에게 일종의 감각적 ‘신호’다. 어디에 무슨 문제가 생겼는지 돌아보게 해주는 친절하고 직접적인 안내인 셈이다. 따라서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는 건, 문제를 파악하는 능력 상실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것은 우리가 ‘기후위기’로 부르는 현재 상황을 받아들이는 태도와도 관련이 있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 이상 환경 징후들이 우리가 느껴야 할 고통의 신호임에도, 정작 우리는 그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마치 기후 자체가 병들어 나타나는 증상이거나, 분노한 자연이 인간에게 보내는 경고로 여기기도 한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해결해야 할 가장 큰 과제는 고통의 감각을 되찾는 일이 아닐까.

상실한 감각은 결국 신경망의 재건을 통해 회복될 수 있다. 끊어진 신경과 신경을 이어 다시 감각이 흐르게 만드는 일, 나는 그것을 ‘태그’라는 연결 행위를 통해 시도해 보고자 했다. 사람과 자연, 사람과 사람, 그리고 또 자연과 자연이 놓아버렸던 손을 되잡아 원래의 하나로 돌아가는 길은 다시 손을 내미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예술가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보았다. 우리가 함께 태그하여 서로 연결됨으로써 잃었던 고통의 감각을 되살리고, 현재의 기후위기가 우리 자신의 아픔임을 깨달아 회복의 가능성을 찾아보자는 전시 제안에, 예술가들은 놀라울 정도로 따뜻하게 내민 손을 맞잡아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태깅되었다.

한국의 깃대종과 민화 속 동식물들에, 어쩌면 실재했다가 멸종되었을지도 모를 봉황까지 더해 완성한 김경화 작가의 조화로운 생명의 덩어리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형태를 바꾸어 우리의 삶에 존재하는 바다의 흔적을 추적하고, 그를 통해 우리가 거대한 자연의 순환 속에 있음을 일깨워준 노무라 유카 작가의 <일상의 바다>. 빛과 그림자를 통해 쓰임을 다해 일상에서 제거된 사물들의 실존 흔적을 포착함으로써 사라지도록 강요된 감정의 층위와 우리가 외면해 온 존재의 자리를 돌아보게 만든 서민정 작가의 <하얀 잔상>. 경쾌하게 움직이며 끝없이 이어진 곡선으로 한성1918의 시공간과 관람객들을 연결해 새로운 감각의 장소를 만들어낸 안재국 작가의 <공간 유희>. 삶과 죽음, 과거·현재·미래가 공존하는 바다, 그리고 개인의 서사와 도시의 역사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한때 존재했던 모든 것들에 ‘태그’를 시도한 야마우치 테루에 작가의 <신호파>, <들어 올려, 떠도는(한때 존재했던 모든 것 속에서)>, <당신은 여기에>. 자연, 인간, 사물의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상호작용과 순환, 소멸 탄생의 세계를 시각화함으로써 인간을 포함한 세상의 모든 존재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사유하게 한 오유경 작가의 <샤이닝 스톤>, <연결인식의 감각>, <맺고 있는 연결 상태 1, 2, 3>. 땅을 착취하고 파헤치기보다는 한 계절을 선명하게 보내는 일을 통해 다음 계절을 준비함으로써 계절과 계절을 잇고, 사라진 당연함을 되살려 다정한 위로의 공간을 제공하는 장두루 작가의 <계절 잇기-땅과 사람 잇기>, <해태님>. 비치코밍으로 수집한 소리 조각들에 인간과 자연의 시간을 엮어, 우리 몸과 감각이 세계와 맺는 관계, 사라지는 것들과 남겨지는 것들 사이의 관계를 청각적 풍경으로 그려낸 정만영 작가의 <recormbing(리코밍) -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이 작품들은 나의 태그에 응답해 온 참여 작가들의 태그였다.

기후위기 탄소중립 with 비치코밍 기획전시

그러자 놀랍게도 나라는 사람은 그대로인데, 그들이 열어 준 세상 속에 내가 있고 그들이 내 세상에 들어와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았지만, 우리 사이의 관계망이 어느새 새살 돋듯 구축되고 있는 듯한 강렬한 느낌은 실로 말로 표현하기 힘든 경험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 태그해 완성한 공동 설치작품 <다시, 태그>는 모두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연결되어 하나의 균형 잡힌 세상을 이룰 수 있다는 예술적 선언이기도 하기에, 그 의미가 더욱 깊었다.

장두루 작가가 물었다. “이런 전시, 또 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대답해 보았다. “계속 만들면 됩니다!”

  • 01 철학자 한병철도 『고통 없는 사회: 왜 우리는 삶에서 고통을 추방하는가』(김영사, 2021)를 통해 고통 공포에 포획당해 만성 마취에 빠져있는 현대인들의 위태로운 삶에 대해 경고한 바 있다.

최승현

예술과 언어, 문학이 만나는 자리에서 전시기획과 글쓰기로 사유를 펼친다.
일상의 균열과 관계의 지층 속에서 세계를 읽으며, 당연함에 다시 물음을 던지는 새로운 감각을 탐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