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작업해 온 작가, 이은정은 5살 때 미술 학원에 다닌 것을 시작으로 예중, 예고, 학사, 석사까지 미술로 한길 인생을 살아온 청년 작가다. 할 줄 아는 것이 그림밖에 없다고 말하면서도 작가로 사는 삶을 이어갈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있다는 그의 ‘끈’으로 연결된 그림 세계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한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이은정
안녕하세요. 저는 부산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은정 작가라고 합니다.
부산에서부터 활동했고 학부 시절부터 서양화를 전공했습니다. 지금 여러 매체에서 활동을 해오고 있습니다. 대표작을 스스로 뽑자면 <코뮤니타스>를 들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이게 멀리서 봤을 때는 파도의 형상이지만 또 가까이서 보면 각자의 인물이 환하게 웃는 모습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대표작 <코뮤니타스>는 어떻게 이름 붙이게 되셨나요?
처음에는 ‘카니발’ 문화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베니스 축제처럼 가면과 의상을 입고 일상의 위치에서 벗어나는 순간들이 있는데, 그때 사람들은 모두 동등한 위치에서 이야기하고 즐기잖아요.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면 마치 신데렐라가 본래 자리로 돌아가는 것처럼 역할이 전환되죠.
이 장면들이 제 삶과도 닮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떤 날엔 딸이 되고, 또 어떤 순간엔 손녀, 선생님, 작가가 되었다가 다시 본래의 나로 돌아오고요. 그러다 ‘축제처럼 살아본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축제 개념을 찾다 보니 ‘코뮤니타스’라는 철학을 접하게 됐습니다.
종교적 용어로 더 알려졌지만 저는 무교이고, 종교적 행사에서도 자연스럽게 문화로 즐길 뿐이죠. 이런 태도 역시 코뮤니타스의 포괄성 안에 있는 것 같아 그 이미지를 작품으로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도피처’로서의 축제가 떠올랐지만, 결국 가면보다 ‘역할’의 변화가 제 경험과 더 밀접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HITCH, KNOTS, FRICTION, 781.8x162.2cm, acrylic on canvas, 2022
‘끈’이라는 소재로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이은정
무엇으로 그릴지 고민하다가, 있는 대상을 그대로 묘사하는 방식은 제 역할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미술의 가장 기초 요소인 점·선·면으로 돌아가 보자고 결심했습니다.
점이 모여 선이 되고, 선이 모여 면을 이루듯, 결국 면은 캔버스 자체이고 선은 그 중간을 매개하는 하나의 존재처럼 느껴졌습니다. 선은 묶이고, 꼬이고, 풀리고, 확장되고, 다시 줄어드는 등 다양한 변화를 품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끈’이라는 이미지로 발전했고, 그 끈들이 서로 연결되고 맞물리는 작업으로 이어졌습니다.
작가님 그림에는 ‘흩어지고 다시 모이는’ 움직임이 반복되는데요.
그건 작가님의 성격이나 삶의 방식과도 닮았을까요?
이은정
제 작품에는 흩어지고 다시 모이는 이미지가 주로 등장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흩어짐은 영원히 이렇게 헤어지는 게 아니고 잠깐 흩어졌다가 다시 집단으로 뭉쳐지고 또다시 잠깐 더 여행을 떠났다가 다시 뭉쳐지고 이런 역할 전환 정도로 생각하시면 작품을 감상하는 데 조금 더 도움이 되실 것 같아요.
이게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저는 대가족 속에 살아왔어요. 어느 날은 조부모님과 어떤 날은 또 우리 부모님 이렇게 지내면서 저 스스로 다양한 역할을 넘나들었었던 것 같아요.
그게 지금의 제 작품을 만들었고, 제가 역할 다양성을 어린 시절부터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리고 작품 활동을 하는 지금은 또 작업실에서의 나, 그리고 집에서의 나, 그리고 공개 석상에서 혹은 제가 일자리를 나갔을 때나 이렇게 다른데 각각의 역할에 충실한 뒤에는 또다시 저 이은정이자 개인의 이은정으로 돌아오는 것도 제 작업이랑 맞닿아 있지 않나 싶습니다.
작가님 작품을 보면 개인과 집단, 혹은 나와 타인이 연결된 느낌이 있어요. 작가님이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의 가장 중요한 ‘끈’은 무엇이라고 보나요?
이은정
사실 저는 가장 중요한 ‘끈’은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사람이 살아가면서 엄청 다양한 ‘끈’을 가지고 살아가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고르자면 제일 첫 번째는 가족인 것 같아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대가족에서 자랐어요. 부모님을 비롯해 조부모님들, 삼촌들, 여러 친척까지. 거기서 많은 영감을 받았고, 제 작업에도 그 영향이 자연스럽게 묻어납니다. 두 번째는 작업자로서의 기준이 되는 끈입니다. 요청에 맞춰서 작업할 것인가, 제 작업의 결을 지킬 것인가 사이에서 흔들리지 않는 기준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함께 작업하는 동료들 역시 중요한 끈입니다.
VILLAGE 21(흩어지고 만나며 일렁이는 우리), 53x145cm, acrylic on canvas, 2023
요즘은 대가족이 많이 없는데, 어떤 환경이었을지 궁금하네요.
이은정
저희는 한집에 살았어요. 주택이라서 2층에 살았었는데, 제가 혼자서 제 방에서 자는 게 무서웠어요. 그래서 어느 날은 내 방에서 잤다가 그 또 다음 날은 할머니 방에서 가고, 한 일주일 같이 자고 나면 할머니께서 귀찮다고 내보내시죠. 그러면 이불 들고 숙모 방으로 가서 “여기서 그냥 살짝 눈만 붙이고 갈게.” 이래 놓고 자고 가고 그런 걸 되게 많이 했어요. 주방에서도 잔 적 있고, 진짜 복도에서도 자고, 여기서 잠깐 그냥 누워만 있다가 하는 식으로. (웃음)
작가님 유년 시절 이야기를 들으니 작가님 작품들이 하나씩 떠오르는데요.
<코뮤니타스>적이고 <움벨트>같은데 <기대어 만든 이야기> 같기도 합니다. 대가족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각자의 지각된 시선으로 기대어서 만든 이야기로 잘 성장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고 보니 작가님 작품의 제목은 작가님의 삶을 대하는 태도 들을 다 함축하고 있는 문장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네요.
이은정
자립이라는 단어가 혼자 서는 게 아니고 옆에 지탱해 주는 사람이 있어야 비로소 혼자 설 수 있다는 문장을 읽고 나서 사실 움벨트라는 그 이미지가 생각이 나긴 하거든요.
사람들이 딱 딱 딱 붙여서 한번 세워 넘어지려고 해도 넘어질 수 없으니 비로소 자립이 된 것 같고 방금 말씀 들으니까 완전 그림을 처음 시작할 때 그 생각이 나네요.
그리고 <기대어 만든 이야기>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전시 제목이기도 합니다. 모든 이미지가 다 기대어 있고 포개어져 있고 한데 기대어 만든 이야기라는 문장 자체가 너무 딱이었어요.
제가 작업실에서 동료들에게도 “우리는 직업이 그림 그리는 사람인데 남들 일할 때 우리도 일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낮에 같이 그림 그리자고 재촉하기도 하는데, 사실 ‘옆에 누가 있어야 그림을 그린다.’ 이런 느낌보다는 누가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나도 그림 한번 그려볼까?’ 누가 좀 쉬고 있으면 ‘나도 좀 쉬어볼까?’ 이런 식으로 뭔가 좀 상생하고 있고 공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야 그림을 그리는 에너지가 좀 나는 것 같아요.
그게 없으면 ‘나 왜 그림 그리고 있지?’라는 생각이 어느 순간 이렇게 막 커지더라고요.
서로 기대고 기대어주는 관계가 없으면 창작의 에너지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걸 늘 느낍니다.
‘나 혼자 신나서 그림 그리는 건가? 나 혼자 내 일기장처럼 그림을 그리는 건가?’ 막 이런 생각도 들고 그래서 기대어서 모든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나를 보면서 전시 제목으로 떠올랐어요.
요즘 작가님 마음속에 가장 강하게 붙잡고 있는 ‘끈’은 무엇인가요?
이은정
조금 현실적인 표현이지만, 지금 가장 강한 끈은 ‘밥줄’입니다. 전업 작가로 갈지, 교육에 더 집중할지 고민이 많은 시기인데, 그럴 때마다 새로운 기획안이나 전시, 인터뷰 같은 일들이 예상치 못하게 연결되곤 합니다. 이런 흐름이 작가로서의 ‘끈’을 계속 이어나가고 찾아가도록 만드는 것 같습니다.
또 하나의 큰 끈은 마지막 전시를 열었을 때의 감각입니다. 전시는 다른 관계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다음 기획으로 이어지는 연결점이 되거든요. 그 과정 전체가 지금 제게 가장 의미 있는 ‘끈’들입니다.
작업하다 보면 ‘풀리지 않는 매듭’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을까요?
이은정
제 안의 내적 갈등이 가장 큰 매듭입니다.
최근에는 새로운 별자리 작업을 준비하는데, 이전 작업을 다시 보여달라는 요청이 많아 혼란스럽기도 했어요. 앞으로 공개할 작업과 너무 다른 결이라 전시를 보류한 적도 있습니다. 개인전이 다가오니 기준을 명확히 세울 필요가 있었고요.
기준을 지키면 고집처럼 보일 때도 있고, 한편으로는 연락이 끊길까 두렵기도 합니다. 그래도 결국은 ‘지금 해야 할 작업’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지금 하는 이 작업을 좋아해 줄 사람은 있겠지’라고 생각하고 일단 해보는 거죠.
전시에서 보이는 자연적 패턴(별자리, 파도 등)은 작업에 어떤 영감을 주나요?
이은정
자연은 늘 예측할 수 없는 가능성을 품고 있잖아요. 제 작업의 끈도 정해진 형태가 아니라 계속 변화할 수 있는 존재라 자연의 흐름과 많이 닮았습니다.
그래서 그때 매듭 작업을 했을 때 사람들이 이렇게 피어오르는 형상이 있었거든요. 작업 노트에 “공동체가 아무리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을지언정 비어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느슨해질 수도 있고 더 단단해질 수도 있다”라고. 끈은 언제든지 풀릴 수 있고 잘릴 수 있으니까요. 공동체의 유동성을 시각화하는 데 자연의 이미지가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끈에 이어서 새로운 작업을 모색할 때 떠올렸던 것이 별자리입니다.
에피소드가 있는데요.
영감이 떠오르지 않아서 3개월을 도서관을 다니며 책만 읽고 작업실을 가지 않았을 때 본가가 양산인데, 본가에 가서 “난 이제 틀린 것 같다. 여행을 갔다 와야겠다.” 이러고 나서는데 밤하늘에 별이 너무 예쁘게 반짝거리는 거예요. 마침 제일 단단한 덩어리를 만들어볼까 궁리하면서 낮에 도서관에서 건축학책을 보고 왔는데 거기 교회건축에 두꺼운 콘크리트 벽에 구멍을 뚫어서 별자리를 만들어서 낮에는 태양 빛이 별자리 모양으로 들어오게 만들었더라고요. 그런 이미지를 보고 멋지다 생각했는데 밤에 별자리가 선명하게 보이다니.
저거를 또 내가 풀어내 보면 너무 재밌을 것 같은데…. 그리고 또 보니까 별자리도 계속 사라졌다가 다시 만들어졌다가 사라졌다가 만들어졌다 모이네요.
이거다! 그래서 별자리로 입체 작업도 만들어보고 진짜 처음으로 석고라는 걸 만져봤는데 또 너무 재밌더라고요.
근데 제가 기존에 갖고 있던 색깔이랑 다르게 나오다 보니까 진짜 딱 반반이었어요. 반은 이전 작업이 더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근데 반은 진짜 재밌다! 이걸로 계속해서 이렇게 또 연결시켜도 재밌겠다 싶었습니다.
요즘에 이거 다시 연결시키는 거 따로 하고 있고, 왜냐하면 석고는 외부에서 작업해야 하니까 추운 겨울에는 잠깐 제쳐두고 다시 평면으로 작업하는 중입니다.
저는 자연 속에 새로운 것이 정말 많은 영감을 주는 것 같아요.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고 상상할 수 있으니까 구체적으로 어떤 영감을 준다기보다는 이 연결과 연결 속에서 오는 엄청 큰 가능성이 상상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 같습니다.
UMWELT, 130.3x89.4cm, acrylic on canvas, 2020
관객이 작품 앞에 섰을 때, 작가님이 기대하는 ‘연결’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이은정
저는 관객이 제 그림을 보며 자기만의 구체적 이미지나 일상을 떠올려주길 바랍니다. 마치 일기처럼요. “어제 먹은 국수 같다”, “내 기억 속 어떤 장면 같다”처럼 개인적 기억과 선명한 이미지가 떠오른다면 그 자체로 저와 연결된 것으로 생각해요.
그래서 전시 때는 방명록을 노트처럼 비치하고, 관객의 기록을 읽으며 다음 작업의 아이디어로 삼기도 합니다.
저는 관객과 명확한 이미지 혹은 어떤 구체적인 언어로 연결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제일 큰 것 같아요.
조금 더 쉽게 설명해 드리면 제가 그린 이미지를 보고 구체적인 이미지나 일상을 떠올려주길 바라는 것처럼요.
예를 들어서 이 그림 어제 내가 먹은 국수 이미지인데 어제 내가 먹은 다크 핑크색인데 이런 식으로 생각을 해주시면 돼요.
제가 방명록을 노트식으로 비치해 놓기도 하거든요. 그 방명록을 한 장 한 장 읽을 때마다 제 다음 작업의 구상이 되기도 하고 또 이렇게 설명해 드리다 보니까 어떤 일화가 떠오르긴 하는데 “언더 코뮤니타스”라는 작품을 전시했을 때 그 작품 이미지는 파도 아래에 사람들이 얽히고설켜 있는 그런 이미지거든요.
근데 처음에 저도 이 이미지가 “저게 뭐지?”라고 관람객들이 생각하실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어떤 한 관람객 분이 방명록에 이렇게 적어주셨어요.
“이 그림은 목표를 잃은 낙담이 아니고, 목표를 찾아가는 과정을 풀어가는 에너지가 느껴진다”라고요. 근데 사실 제가 작업하는 게 딱 그거였었거든요.
제가 작업하면서 표현하려고 했던 내용을 진짜 정확하게 짚어주신 거예요.
그래서 그 글을 보고 ‘관객분과 내가 통했구나! 더 훨씬 더 하나가 되었구나!’ 이렇게 되게 감동 받았던 순간이 있어요.
그래서 저도 오히려 거기서 ‘아, 내가 그림으로 누군가한테 감동을 줄 수 있고, 힘을 주고, 에너지를 줄 수 있구나! 더 열심히 해야지!’ 뭐 이렇게 용기를 얻었기도 했고요. 왠지 이분한테도 그런 힘이나 에너지를 드린 것 같아가지고 “저희 절대 포기하지 맙시다” 그랬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차이없는 구별, 162,2x357.6cm, acrylic on canvas, 2018
작가님이 개인적으로 가장 경계하는 것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어떤 건가요?
이은정
제가 가장 경계하는 거는 앞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뭔가 직접 눈으로 바라보지 않는 그런 소통이라든가, 겪어보지 않고 그런 걸 제일 경계하고,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은 제가 바로 서서 이렇게 마주 보고 소통하는 모든 그 순간을 가장 소중히 여깁니다.
근데 그게 제일 소중한 건 사실 전시장 안에서 이제 관람객들이랑 직접 마주할 때입니다. 근데 제가 좀 소극적이라서 작가가 아닌 척…. 예를 들면 전시장에 가보면 지킴이처럼 그냥 이렇게 가만히 앉아 있는데 이렇게 그 관람객들이랑 저랑 소통하는 건 사실 저는 그림이 대신하고 있고 관객들이 앞에 서 있으면 그때 제일 소통이 되는 것 같아요.
근데 사실 그림을 보고 “이렇게 산만한 그림이 별로다.” 이렇게 말해도 저는 그마저도 좀 좋아요. 어쨌든 그림을 보고 어떤 감정을 느끼고 표현해 주신 거니까 그래서 제가 무채색 계열의 그림을 그려볼까 이런 생각을 한 적도 있고 사실 이미지라고 하는 거는 받아들이는 사람이 해석도 되고 뭔가 나오고 하는 거니까 그래서 가장 소중히 여기는 끈은 그것 같아요.
관람객과의 소통!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작업에서 ‘끈’이라는 주제를 더 깊게 파고들고 싶은 부분이나 새로운 방식으로 실험해보고 싶은 방향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이은정
사실 준비하고 있는 게 있어요. 그동안은 매듭이든 어떤 형태를 형상화해서 사회 집단을 그려왔는데 이제는 그 사회를 구체적으로 명시해서 표현해보려고 시도 중입니다. 어떤 공동체를 그룹화할 때 지역색 아니면 집단색, 정치색, 이런 식으로 색이 뒤에 늘 붙더라고요. 그래서 이 색을 조금 더 풀어서 한번 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색, 미국을 대표하는 색, 일본을 대표하는 색. 이런 식으로 해서 색과 끈을 활용해서 세계적 유대감을 조금 더 집중적으로 조명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혹은 좀 더 작은 지역으로 나눠도 좋고요. 지금 이미지로는 나왔는데 아직 작가 노트가 형성되지 않아서. 이게 정리가 되어야 하나의 작품이 되고 완성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사실 글이 편하면 글 작가가 됐을 텐데. 추상적인 걸 이미지로 풀어내기엔 너무 편해요. 근데 이 이미지를 다시 글로 보관을 해야 하니까, 조금 말씀드리기에는 시간이 걸리는 거라서. 제가 글이 안돼서 지금 그림 작가를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웃음)
이은정 작가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마주 바라보는 시선에 있다. 이는 삶에서 뿐만 아니라 자신의 작품을 바라보는 관람객과의 시선, 스스로에게 작가로서 살아가고 있는가를 똑바로 바라보며 끊임없이 질문하는 태도에도 있다.
인터뷰 말미에서 드러난 작가의 버킷리스트는 명확하다. 국가 소장품 작가가 되는 것! 이는 성취나 보상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계속 ‘작가로 존재하고 있음’을 사회적으로 확인받고 싶은 욕망에 가깝다. 그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이 “작품이 좋다”는 말이라는 점은, 작업의 지속성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태도를 보여준다.
무엇보다 가장 인상적인 말은, 이 모든 고민 속에서도 작가는 여전히 그림 그리는 작업이 “재미있다!”고 말한다는 점이다. 끈이라는 소재가 지닌 무한한 변형 가능성은 그의 상상을 멈추지 않게 한다. 언젠가 슬럼프가 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품고 있으면서도, 지금 이 순간 그는 분명히 작업 속에 있다. 이 인터뷰 내내 작가로서의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가지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당신은 여전히, 그리고 분명히 작가로 살아가고 있다!” 라는 말을 전해주고 싶다.
옥순주
연극을 사랑하며 그 안에서 성장한 삶의 단상을 모아 「나의 페르소나 별이」라는 책을 냈다. 현재 심리극역할극전문상담사로 연극을 활용한 치유적 직업에 관심을 두고 있으며, '자가서사극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