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앎 ②

예술의 끈 - 대동(大同)에서 대등(對等)으로

정두환

부산CBS교향악단

1. 예술 한다는 것

어린 날엔 음악회장을 간다는 것이 대단한 특권을 누리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1973년 10월 부산시민회관이 개관하면서 부산에도 제대로 된 공연장이라는 것이 생겼다. 지금에 와서 이 상황을 돌아보면 많은 것이 아쉽지만, 당시엔 부산에 대궐 같은 공연장이 생겼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어린 나에겐 가슴 뛰는 일이었다. 조방 앞 휑하던 공터에 엄청난 크기의 공연장이 밤에 환하게 불을 밝히며 주변의 어둠을 몰아내는 듯한 기세, 그 속에서 잘 차려입은 사람들이 밝고 환한 웃음으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들어가고 나오는 모습이 참 좋아 보였다. 아니 부러웠다. 언젠가 나도 이곳에 가서 음악을 들어봐야지 하는 생각을 아주 많이 했다. 부산시민회관 개관 당시는 옆에 있던 삼익아파트를 제외하면 주변은 먼지만 날리는 공터였다. 어린아이들에겐 축구나 야구를 하며 놀기에 아주 좋은 공터였다. 그러나 나에겐 시민회관만 눈에 들어왔다. 어떤 날은 집에서 보이는 시민회관에 환하게 불이 켜지면 마구 심장이 뛰었다. 가서 구경하고 싶었다. 어느 날 시민회관에서 음악회를 관람하였다.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사람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면서 나도 음악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였고, 이후 지금까지 음악가의 삶, 예술가의 삶을 살고 있다. 어린 날 환하게 밝혀진 대궐 같은 집에서 행복한 얼굴로 노래하는 어른들의 모습에서 나의 길을 발견한 것이다. 예술을 한다는 것은 내가 먼저 행복한 일이며 행복을 나누는 일이다. 어린 날의 꿈이 평생 나와 동행하며, 퇴직한 뒤의 삶에도 이어지니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예술은 퇴직이 없으니 말이다.

2. 대동단결(大同團結)하여 예술의 길을 걷자

어렵고 힘든 음악을 공부할 때 가장 큰 고통은 경제적인 고통도 크지만, 생각과 뜻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없다는 것이다. 주변 친구들은 본인만 잘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었고, 함께 공부하고 연습하려는 모습은 없는 듯 보였다. 다른 대안이 필요했다. 음악학과를 벗어나 타과 학생들을 만나보았다. 이들과 함께 합창단 동아리를 만들기로 마음을 먹고 혼자서 대자보를 작성하여 온 대학 캠퍼스에 붙여 대학에 합창 동아리를 창단했다. 함께 토론하며 합창 연습과 공연 등 모두 참 열심이었다. 대동단결을 이야기하면서 우리가 함께 최선을 다해 변화하는 진정성이 드러날 때 대학 본부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생각을 나누며 대학 시절을 보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단순한 학교 동아리 합창단을 넘어 당시 부산에 있는 7개 대학 6개 합창단을 연합하여 함께 공연하곤 하였다. 뜻을 모으니 대동단결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혼자보다는 둘이 좋고, 둘보다는 더 많은 사람이 모여 노래함이 참 좋았다. 이처럼 합창단을 만들고, 연합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이 좋았던 나의 젊은 시절이었다. 연대한다는 것은 서로 끈끈한 정을 나눈다는 것으로, 우리 심장을 더욱 뜨겁게 데우는 희망이었다. 이러한 것들이 대학 졸업 후엔 부산서구어머니합창단, ‘글로리콰이어’를 만들었고, 이후로 교향악단과 관악단을 만들어가며 음악인의 길을 걸었다. 공연예술은 개인들이 주체적으로 사고하며 이를 바탕으로 대동단결하여 예술 행위를 할 때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의 가치를 가장 잘 실현할 수 있다.

정두환

3. 대동(大同)에서 대등(對等)으로 - 화요일에 만난 사람들

지난 40여년 예술가의 길을 걸으며 나는 큰 뜻을 품고 함께 단결하자는 대동단결을 강조했었다. 특히, 예술가와 관객이 구분되어 있고, 예술가는 자신의 예술세계를 위해 조금 괴팍하거나 기괴한 행동을 하여도 예술가니까 하며 이해하는 통념에 의문이 생겼다. 이런 생각을 하던 중 예술가들의 삶과 예술 행위의 연관성을 같이 공부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 끝에 필자가 당시 PSB(현. KNN)방송국에서 방송을 진행하던 프로그램인 <좋은음악 & 좋은만남>의 이름으로 시민들과 함께 음악 인문학 프로그램 화요음악회를 만들어 2000년 3월부터 현재까지 강의를 이어오고 있다. 예술을 통하여 다양한 사람들과의 삶을 이야기하고 공부하는 프로그램으로 지금까지 840여 회를 이어오고 있다. 서로를 알아가는 일, 서로를 이해하는 일은 대등한 관계가 형성될 때 더욱 활력을 갖게 된다. 먼저 알았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더불어 알아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며, 누가 높거나 낮음이 없고, 누가 잘나거나 못남이 없는 대등한 관계 속에서 예술가의 세계를 공부한다. 화요일의 만남은 나의 삶에 등불 같은 존재가 되었다. 여기에 함께하였던 많은 사람들은 그 누구도 나이와 학력, 경제적으로 가진 사람과 적게 가진 사람 차이나 차별 없이 대등하게 있다. 화요일에 만나는 사람들은 누구든 한쪽 어깨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편히 쉬게 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배우는 사람들이다. 물질적으로는 비록 넉넉하지 않을지 모르나 따뜻한 마음이 충만하여 좋은 세상을 만들고자 한다. 우리들은 편안한 만남 속에 앞서 살았던 예술가, 사상가, 과학자, 문인 등 다양한 장르의 사람들의 삶을 공부한다.

화요음악

우리는 살아가면서 혹은 예술 행위를 하면서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잡고 있다. 하지만, 의미는 부여하는 것보다 발굴하는 것이다. 나는 오늘도 나에게 주어진 일을 충실하게 최선을 다해 노력할 뿐이다. 예술 행위는 세상을 재미있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조금의 여유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힘든 이가 쉬어갈 수 있도록 마음의 공간이라도 나눌 수 있다면 이게 예술의 길이 아닌가….

정두환

예술의 향기를 따라 길을 나서는 문화유목민.
부산CBS교향악단과 두레라움윈드오케스트라의 지휘봉을 잡고 있으며,
문화 현장 곳곳에서 아름다운 선율로 사람들의 마음을 잇는 여정을 이어가고 있다.